헹크 펠리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헨드리퀴스 아드리안 "헹크" 펠리칸 (Hendricus Adriaan "Henk" Pellikaan)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레르담 |
포지션 | 라이트 윙 하프 |
신체조건 | 176cm |
등번호 | -[1] |
소속팀 | TSV 롱가 틸뷔르흐 (1928-1946) |
국가대표 | 13경기 / 0골 (1932-1946) |
1. 생애[2] [편집]
1.1. 선수 생활 [편집]
1.1.1. 클럽 [편집]
펠리칸은 고향 레르담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3세부터 TSV 롱가 틸뷔르흐와 인연을 맺었다. 17세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펠리칸은 축구 선수로 뛰면서 건설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롱가 틸뷔르흐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1944년 롱가는 에이르스터 남부 우승과 네덜란드 전국 리그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했는데 여기에 펠리칸의 공이 지대했음은 당연했다.
1.1.2. 국가대표팀 [편집]
펠리칸은 1932년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에 데뷔했다. 데뷔전의 상대는 독일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펠리칸은 바스 파우어를 밀어내고 빌럼 안데리선, 푸크 판헤일과 하프백 라인을 구성했으며 네덜란드는 2대0으로 독일에 승리했다.
그는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판헤일, 안데리선과 호흡을 그대로 맞췄지만 1라운드에서 스위스에 패하며 자신의 유일한 월드컵 참가 기록을 마감했다.
그 이후 3년 반동안 파우어에 밀려 대표팀 경기를 뛰지 못한 펠리칸은 1937년 10월 31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홈경기에 다시 소집되었지만 네덜란드는 프랑스에 2대3으로 패배했다. 펠리칸은 1938년에 입은 무릎 부상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대표팀과 거리가 먼 선수 생활을 보내다 1946년 룩셈부르크전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그는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판헤일, 안데리선과 호흡을 그대로 맞췄지만 1라운드에서 스위스에 패하며 자신의 유일한 월드컵 참가 기록을 마감했다.
그 이후 3년 반동안 파우어에 밀려 대표팀 경기를 뛰지 못한 펠리칸은 1937년 10월 31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홈경기에 다시 소집되었지만 네덜란드는 프랑스에 2대3으로 패배했다. 펠리칸은 1938년에 입은 무릎 부상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대표팀과 거리가 먼 선수 생활을 보내다 1946년 룩셈부르크전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1.2. 이후 [편집]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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